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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들에게 언제나 알찬 정보를 제공해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직장인 블로거입니다. 여러분은 조선 수군의 제 1 명장 하면 떠오르는 분이 누구신가요? 단연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이 치른 수많은 해전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한산도 대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기의 조선을 구한 명장 이순신
지금으로부터 430여 년 전 1592년 4월 13일 섬나라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은 일본군을 물리치는데 가장 큰 업적을 세우신 위인입니다. 수많은 해전 중에서 한산도 대첩은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해전입니다. 한산도 대첩은 우리나라 역사의 3대 대첩인 동시에 임진왜란 3대 대첩이기도 합니다.
지형을 이용한 한산도 대첩
선조 25년 1592년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의 수군이 일본 수군들을 크게 무찌른 전투가 한산도 대첩입니다. 왜군들이 정박해 있던 견내량은 거제와 통영 사이의 좁은 바다입니다. 이곳은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고 좁은 물길에 물살이 거세며 바다 밑의 암초들도 많아서 해난 사고가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좁은 견내량의 수로에서는 한꺼번에 적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견내량에 정박하고 있던 일본 수군은 조총을 이용한 근접 전투를 벌이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반대로 조선 수군은 대포를 이용한 전투가 유리하여 일정한 사거리가 확보된 지형에 적합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은 최적의 해전 장소로 좁은 견내량이 아닌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한산도 앞바다로 정했고 견내량에 정박해 있던 일본 수군들을 한산도로 유인합니다. 조선 수군 5, 6척을 적의 선봉으로 출전시켜 일본 수군들이 있는 견내량으로 급습하여 일본 수군들이 쫓아 따라올 수 있도록 유인책을 펼칩니다. 조선 수군들은 일본 수군에게 밀리는 척 후퇴를 하며 적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했고 한산도 앞바다에 다다르자 작은 섬들에 숨어 있던 많은 조선의 수군들이 일제히 나타나 학익진을 펼치며 일본 수군을 포위하고 공격을 하여 대승을 거둡니다.
학익진(鶴翼陣)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사용했던 병법은 우리들에게 많이 친숙한 학익진입니다. 학이 날개를 펴듯 조선의 수군들은 학익진을 펼쳐서 일본의 수군들을 한 번에 격파시킵니다. 사실 학익진이라는 병법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배를 돌려가면서 공격을 해야 했고 조선 총통을 재정비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으며 바다 위의 배의 흔들림으로 인해 정확한 포격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서도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들을 완벽하게 격파시켰습니다.
한산도 대첩의 승리로 인해 임진왜란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고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일본의 오만과 사기를 꺾어버렸고 해상권을 장악하지 못한 일본군은 그 당시 함경도까지 진격해 나가던 일본군에게 병력이나 군수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군은 호남을 장악하여 한반도 북쪽으로 진군할 생각이었지만 이순신으로 인해 서해안으로 가는 길이 차단되어 거제도 서쪽으로는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견내량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가기 위한 유일한 길목이었는데 한산도 대첩에서 대패를 한 일본은 곡창지대인 호남으로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도요토미는 계획을 전면 수정하면서 해전을 금지시킵니다.
지금까지 한산도 대첩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수많은 해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이 생기고 숙연해집니다. 그럼 또 다른 소식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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